강은교

Eunkyo Kang

강은교는 유년기에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다가 2017년 귀국해 서울에서 활동 중이다. 자카르타, 시카고, 암스테르담에서 미디어아트 전공으로 학부를 마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인터미디어 전문사 과정을 수료했다. 오랜 기간 지속한 다문화적 삶은 작업을 구축하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주로 문화 간의 이질성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 없는, 인간 본연으로서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는 주제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새로움, 시간, 감각, 현상, 개념적 공간 등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작업한다.

Eunkyo Kang moved to Indonesia as a child and returned to Korea in 2017 to work in Seoul. In Jakarta, Chicago and Amsterdam, Kang finished her undergraduate degree with a major in media art and completed an intermedia master degree at the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The long-standing multicultural life has had a great impact on the way work is built. It mainly talks about topics that can be instinctively communicated and understood when presented before an audience, without needing the insight of a particular culture. To work using various forms of medium that suit the topics with interest in newness, time, sensation, phenomenon, conceptual space, etc.

Now Live

2020년 6월

친구와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식사 시간이 되어 각자 먹을 것을 준비해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워낙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살아온 탓에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허전한 마음은 잘 들지 않았는데,
이제 마음먹더라도 오랫동안 그들과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낯선 느낌이다.

친구 얼굴을 자세히 볼수록 픽셀이 자글자글하다.
가끔 뿌옇고 이상한 표정으로 멈춰있기도 한다.
그녀가 조금 늦게 대답하고 조금 늦게 웃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내가 이상한 농담을 했나 1초 정도 걱정을 하기도 했다.
몇 번은 의도치 않게 서로의 말을 잘라먹기도 하면서
우리는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작품〈Now Live〉는 방문할 수 없는 어떤 공간을 보여준다. 마치 구글 스트릿 뷰와 같이 360도 카메라를 통해, 공간의 풍경은 기록된 사진이 아닌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관객에게 전송된다. 일정 간격으로 설치된 3대의 카메라는 공간에 설치된 거울 조각들, 시계, 회전하는 선풍기,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천 등 몇 가지 오브제를 비추고 있다. 이때 카메라는 특정 시선을 제시하지 않는다. 관객은 오롯이 자신이 제어하는 시선으로 공간을 살펴본다. 오브제들은 공간의 단서로 역할 하는 듯하지만 동시에 이 방문할 수 없는 공간을 더욱 모호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주어진 것은 저화질의, 불안정한 연결의, 라이브 스트리밍되는 상황뿐이다. 이 공간은 어디나 될 수 있고 이곳에서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닿을 수 없는 ‘개방된 공간'-시간과 시각적으로-의 증인들은 무엇을 근거로 어떤 증언을 할 수 있을까.

June 2020

It has been a while since I last had a conversation with this friend face-to-face. Soon, it was time to eat. We each got some food and returned to the table. Since I have been traveling extensively, I have never felt something was missing in my life, even when I was far away from my friends. However, it feels so strange to think that I probably will not be able to see them again for a long time. Looking at my friend’s face closely, I can see the fuzzy pixels. Sometimes, her face stays still—with a blurred, weird expression. Even though she answers and smiles a little later, I worry for about a second that I may have made a horrible joke. We carry on with our conversation, unintentionally cutting off one another a couple of times.

〈Now Live〉shows a certain space we cannot visit. Like Google Street View, 360-degree cameras send the view of that space to the audience via live streaming, instead of photos. Three cameras set up at regular intervals record a few objects in the space, such as pieces of mirrors, the clock, the oscillating fan, fabric swaying in the breeze from the fan, and so on. The cameras do not present a certain vision; rather, the audience sees the space with a vision they control themselves. The objects seem to serve as the clues to this space, but, at the same time, they make this space, which cannot be visited, more ambiguous. The only thing the audience has access to is this low-quality, unstably connected, live streamed video feed. This space can be anywhere, and anything can happen here.To what can witnesses of this temporally and visually unreachable ‘open space’ testify?

about Web-Exhibition

전시하기로 한 설치 작업을 오스트리아로 싣고 갈 준비를 하던 중 팬데믹 상황이 되어 전시가 온라인으로 바뀐다는 연락을 받았다. 작업을 어떻게 온라인으로 관객에게 보여줘야 하는지를 생각해내야 했다. 이 설치 작업은 물질의 현상, 소리, 기억, 기록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구조인데, 여느 설치 작업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설치된 공간의 특징 또한 작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품의 작동 조건에 공간의 역할이 포함된다는 것은 곧 현장에서 관객과 작품이 직접 마주해야 그것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방면으로 고민하던 중, 나는 애초에 이 상황이 해결할 수 없는, 혹은 억지로 해결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작품의 매체와 전시 조건은 처음부터 작품의 개념과 존재론적 맥을 함께 하게 되어 있는데, 그중 무엇이라도 누락된다면 온전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팬데믹이 우리의 감각을 바꿔놓은 상황에서 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현시점과 함께하는 작품을 새로 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Now Live〉의 공개를 앞둔 지금 한 가지 물음이 생겼다. 팬데믹 이전의 작업들은 앞으로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 것일까. 물질적 세계의 의미가 바뀌었고 비물질적 세계 또한 마찬가지다. 이는 작품의 개념에 현상을 부여하는 매체의 작동 또한 달라지게 한다. 그러므로 팬데믹 이전에 제작된 작업들은 어떤 면에서 더 이상 현재에 유효하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예를 들어 구 버전의 시스템에서 제작되어 아카이빙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많은 뉴미디어 작품들의 상황과는 또 다른 것이다. 이전의 작업을 현재로 불러오기 위해 그동안 재현(Reenact)의 방식을 사용했다면, 지금은 전환(Convert)의 방법론이 필요하다. 전혀 다른 토양 위에,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고려된 새로운 타임라인에서, 팬데믹 이전의 작품을 작동시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While preparing to bring the installation artwork to Austria for the exhibition, I was informed that the exhibition would be held online owing to the pandemic. I had to figure out a way to present the work to the audience online. This installation has a complex interconnected structure of physical phenomena, sounds, memories, and records, and as with any installation artwork, the features of the space in which the work is installed also play an important role. The fact that the role of the space is an operational condition for the work means that the work operates properly only when the audience and the work face each other on the spot. After agonizing over the problem, I concluded that this situation could not or should not be resolved by force in the first place. The medium and exhibition conditions of a work are bound to share the work concept and existential traditions from the beginning. Thus, if even one of them were to be omitted, it would not be a complete work. Moreover, with the pandemic changing our senses, I felt the need to tell a new story and decided to produce a new work—the work I have completed as of this writing. With the release of 〈Now Live〉coming up, a question has come to mind: “How should artworks created before the pandemic be handled in the future?”

The definition of both the material and non-material world has changed. This also changes the operation of media that grant phenomena to the concept of an artwork. Thus, the works produced prior to the pandemic, in some ways, are no longer valid. This is, for example, a different situation from many new media works that were produced in the system’s old version and are no longer seen without going through the archiving process. If reenactment was used, in the past, to bring previous works to the present, now is the time for a methodology of conversion. On completely different soil, and in a new timeline where unpredictable situations are considered, artists need to explore ways to operate the works created before the pande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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